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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독립만화경

1919년 4월 15일 두렁바위라 불리던 제암리 마을의 일상이 무참히 찢겼다. 잿더미가 된 교회와 마을... 까맣게 그을린 시신들... 이날 타오른 참극의 불꽃은 어떤 연유가 있던 걸까. 1919년 3월 한반도 전역은 독립을 부르짖는 3.1독립만세운동의 기운으로 들썩인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우와아악;; 터질 게 터졌구나;; 경기도 화성 지역 서울에서 이리 만세 시위가 벌어지고, 지방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하니, 화성에서도 들고 일어나야지! ㅇㅇ! 우리도 만세 시위를 조직해보세!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 만세 시위를 비폭력 평화 시위로 진행한다고 하니, 우리도 비폭력 룰을 따라야 할 것이야. 으에?!  비폭력 평화시위라니! 그 뭔 한가한 소리인가! 평화롭게 독립만세 외치면 일본놈들이 감동 받아서 물러가준대냐?! 그러게! 그리하여 화성 지역의 시위는 완력을 동반한 혁명의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모든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와서 왜놈에 맞서자! 이때 화성 지역의 노년층은 시위의 지휘부, 브레인 역할을 맡았고 신묘한 방법으로 노년의 지혜를 보여주마. 장년층은 방화반을 구성해 주요 시설 방화 · 파괴 공작을 담당했으며, 우리는 4월 2일에 쌍봉산 봉화가 오르면 그때 출발하는 겁니다!! 청년층은 돌격반을 구성해 완력 투쟁에 앞장섰다고 한다. 뭐, 아무래도 힘쓰는 건 청년들이 해야겠지;; 그리하여 1919년 3월 28일 송산면 사강리 장날을 맞아 1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를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얼씨구?! 시위대와 일본 경찰이 충돌했을 때,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홍면옥이 노구치 순사분장의 총탄에 쓰러진다. 탕! 총알맞을 좀 봐야 해산하겠구만! 이 왜놈들이 총질이면 다 해결되는줄 아느냐?! 악으로 깡으로 함 붙어보자!! 뻑 으억;; 격분한 군중은 돌과 몽둥이로 누구치 순사부장을 때려죽인다. 3월 31일 발안에서 1000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었고, 4월 3일에는 만세꾼이 2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날 시위대는 면사무소와 일본 경찰 주재소를 습격한다. 목재 건물이라 잘 타겠구나야!! 시민들에 대한 폭력과 고문을 이삼던 악질 순사 가와바타는 조센징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이날 몰려둔 군중에 의해 처단된다. No more Peace!! 다스께떼!;; 지역의 일본 관헌들과 일본인들은 시위대를 피해서 모두  도주. 쨍그랑 지역 치안 모 젠젠 붕괴 상태 데스네!!이에 항쟁 진압을 위하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헌병대 병력이 4월 13이 화성에 투입되고. 헐퀴!?! 일본군은 강력한 무력으로 지역 내 마을들을 짓밟아 나갔다. 우리 마을이 무슨 죄가있다고...? 4월 15일 제암리까지 들이닥친 일본군은 주민 수십 명을 몰아세운다. 전할 말이 있으니 마을 남정네 모두 제암리 교회에 모이도록! 으읭? 그리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아니, 이게 뭐하자는 거요?!탕! 커헉?!!
일본군은 제암리 교회에 갇힌 마을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개시. 이후, 교회에 불을 질러 학살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네를 돌며 학살과 방화를 자행. 30여 채의 제암리 민가 대부분이 잿더미가 된다. 제암리 학살을 저지른 일본군은 곧바로 인근의 고주리로 향해 만세 시위 주동자인 김흥열의 집으로 들이친다. 폭도 수괴의 행방을 불어라! 네깟놈들한테 굴복해 입을 열까보냐!! 이에 일본군은 김흥열 일가 6명을 그 자리에서 살해. 피해자들의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인데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고 한다.이후 화성 각지에서는 가혹한 토벌이 이어지고, 결국 거인의 발에 대한의 인민이 밟혀죽는구나;; 화성 지역 곳곳에서 항쟁에 앞섰던 이들마저 줄줄이 잡혀온다. 구금과 폭행, 가혹한 고문이 이어지고, 끄아아악!!보안법 위반 및 소요와 살인으로 유죄를 선고한다! 보안법? 내 나라 내가 살리겠다는 무슨 위반?!! 한편 학살의 주범인 아리타 중위에 대해서는 치안 붕괴 상황에서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죠. 그 모든 범죄를 덮어 버린다. 아리타 도시오 중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휴;; 없던 일로 하자고. 뭐, 몇년 지나면 아무도 기억 못하겠지.. 화성의 매운맛으로 자축하시죠. 화성 매운 갈비찜, 화성 불낙지가 아주 화끈합니다~! 음? 외국 신문이... 제암리 학살! 일본군의 만행! 쿳소!!! 양놈들이 이건 어떻게 알고 보도한 거야?!! 외국인 선교사, 기자, 외교관 등이 현장을 방문해 그 참상을 확인하고 전 세계에 폭로함으로써 제암리 학살은 세계사에 그 기록을 뚜렷이 남기게 된다. Oh; God;; 스코필드박사 이후 제암리는 100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증언되고 기억되어왔지요.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이제 우리는 그 증언과 기억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요. 다음 100년까지도 그 뜨거웠던 열망의 불길이 이어질까요. 역사를 지우고 재단해서 비틀려 하는 모략이 횡행하는 이 세상에서. don't care~ 그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그러모아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의 역사를 이어나가리다. 절대로 잊지 않으리다. Remember Aprill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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